Page 72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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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Ⅱ. 탄탄한 성장의 가속 엔진을 달다





            써 기존 15만 대 생산능력을 포함해 총 45만 대의 생산체계를 갖췄다. 현대자동차는 국제

            단위의 경제적 생산 규모인 30만 대를 훨씬 넘기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게 됐다.
            울산공장 준공을 앞둔 1984년, 현대자동차 고위급 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X-Car 프

            로젝트 총괄 담당 임원은 성진기공에게 자동차용 벨로우즈 생산을 제안했다. 이 인사는
            성진기공이 현대건설에 플랜트용 제품을 납품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데다 벨로우즈 전
            문업체로서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현대자동차의 전격적인 제안에 성진기공은 주저하지 않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담당
            자로부터 보고를 받은 김용호 사장은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

            했다. 그동안 자체 기술력을 꾸준히 축적해왔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을 선택했
            다. 웬만한 기술력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자동차업체의 벤더가 될 수

            없었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다음은 김 사장의 당시 상황 설명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산업용만 취급했지 자동차는 처음이었습니다. 자동차는 다른 업종과는 달리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생산 기술은 물론 생산라인까지 모두 갖춰야 한다는 의미입

                           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자동차부품 생산에 몰두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라인을 갖춰나갔습니다. 한마디

                           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플렉시블 튜브 국산화를 제안한 속 깊은 이유
            현대자동차가 성진기공에 자동차용 벨로우즈의 국산화를 제안한 이면에는 국내외 경제

            상황을 비롯해 전 세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흐름 등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었다. 먼저
            현대자동차가 생산하려던 X-Car의 구동방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1980년대 들

            어 세계적인 추세가 전륜구동(FF) 자동차로 넘어가면서 해외시장 공략을 목적으로 삼
            은 X-Car 역시 FF 방식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X-Car는 진동과 소음을 줄여 승차감을

            높이고 배기계의 수명을 연장하는 플렉시블 튜브의 부품 개발이 반드시 필요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부품업계도 육성시켜 자동차부품의 국산화율
            을 높이려는 정책을 펼쳤다. 정부의 강한 의지 덕분에 국내 부품산업은 빠른 속도로 국

            산화를 이뤄냈고, 자동차업체들도 부품을 공급하는 벤더업체들을 적극 지원할 필요성
            을 느꼈다. 현대자동차는 곧이어 협력업체를 지원하는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벤더업체

            들의 생산성과 품질 향상, 설비개조 등에 공동 대처했다. 성진기공도 이에 발맞춰 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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