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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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Ⅰ. 부품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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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면서 치밀하게
해외시장 노크
처음이자 마지막 경영적자 슬기롭게 극복
성진기공은 반월공단으로 일터를 옮긴 후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공장 이전은 회사 규모
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와 함께 경영적 부담도 가져왔다. 일시적인 현상이
긴 했으나,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경영적자를 기록했다.
내부적으로는 매출 감소와 냉난방 설비공사 중단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생산설비를 반
월공단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정비에 힘을 쏟다 보니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공장을 완공한 이후 사업목적에서 건설업(냉난방 설비공사)을 제외시킨 다음 제조와 냉
난방기 부품 생산으로 업종을 전문화했다. 장래 벨로우즈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
는 경영자의 굳은 의지를 반영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대외적인 요인은 1979년 말 전 세계를 강타한 중동발 제2차 오일 쇼크였다. 1970년
대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던 우리 경제는 제2차 오일 쇼크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1979년
6.5% 성장에 그쳤다. 이듬해 상황은 더욱 참담해 5%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불황을 맞았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치솟던 물가상승률은 무려 30%에 달
해 서민경제를 늪 속으로 빠트렸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경기 불황은 성진기공을 비껴가지 않았다. 공장 이전을 위한 단기차
입금 등 금융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잠시 주춤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회사 설립 이후 처음 맞
이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직원들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김용호 사장은 직원들의 월급을
제날짜에 지급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그 의지는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지켜졌다.
직원들도 경영진의 의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헌신적인 노력과 확고한 애사심으로 화답했다.
성진기공은 안팎의 불황을 타개하고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심혈
을 기울였다. 김 사장은 경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1980년 4월과 11월 두 번에 걸쳐
자본금을 증자해 자본금 총액을 1억 8,000만 원으로 늘렸다. 이와 함께 조직 역량을 강
화하고 제품군의 활용 폭을 넓히면서 사업영역의 확대를 도모했다. 이를 토대로 1980
년도의 일회성 불황을 극복하고 빠르게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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