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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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Ⅰ. 부품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다
1970년대 후반 성진기공 직원들
반월공장 신축과 설비 이전, 그리고 증설 자금은 성수공장 매각 대금을 비롯해 중소기
업 시설자금 지원금, 금융기관의 담보대출 등으로 확보했다. 시중은행에서의 자금 확보
와 함께 총 3차례에 걸쳐 자본금을 증자해 공장 이전 이후의 상황에 대비했다. 이로써
공장을 이전하기 전 자본금 총액은 1979년 4월 기준 1억 원으로 늘어났다.
성진기공의 입장에서 반월공단으로의 이전은 회사 규모나 매출에 비해 과감한 투자였
고, 짧은 기간 늘어난 부채와 경비로 인해 경영환경이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김
사장은 이를 계기로 아무리 좋은 조건의 정부 지원금이라고 해도 부채가 생기면 경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실을 다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는 기업 문화가 이때부터 싹을 틔웠다.
Inside Story
회사의 첫 복지 혜택과 직원들의 헌신
처음 반월공단에 입주했을 때 교통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서울지역에서 거주하던 직원들은 출퇴근 자체
가 곤욕이었다. 서울에서 공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도로 상태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겨울철에 눈이라도 내리면 출퇴근 시간이 마냥 늦어졌다.
공장 이전과 거의 동시에 일부 직원들은 회사를 나가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2인승 버스를 통근
버스로 운행했다. 서울 공릉동에서 출발해 직원들이 살고 있는 곳곳을 순회하며 대방동을 거쳐 반월공단
으로 오는 코스였다. 일부 직원들은 영업부 소속의 화물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어떤 직원들은 아예 안양과
안성 등지로 살림을 옮기기도 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반월시 군자동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기숙사용으로 제공했다. 통근버스와 기숙사 제공은 성진기공 최초의 복지 혜택이었다.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그 어느 회사보다 강했다. 서울에서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 공장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근무했다. 여름에는 공장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근무하
는 직원도 있었다. 직원들의 책임감과 애사심은 성진기공 성장의 가장 강력한 저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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