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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Ⅰ.  부품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다





            1976년 벨로우즈 제품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56%를 차지했는데, 설비공사 수입을

            넘어서 확실한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는 증거였다. 매출 신장률은 이전 해와 비교해
            664.5%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고, 경영실적이 흑자로 전환되면서 매출액 1억 원

            시대를 눈앞에 뒀다. 이듬해에는 익스팬션 조인트의 판매가 더욱 증가해 3억 7,000여
            만 원을, 1978년에는 7억 6,000여만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관련 업계는 설립한 지 얼
            마 안 된 신생기업이 부품업계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고 표현했다.


            Inside Story

            건축용 익스팬션 조인트의 부가가치
            우리 경제사에 1970년대 중후반은 고도성장기로 기록돼 있다. 특히 이 시기에 건설경기가 활황기에 접어
            들면서 서울·경기 등 대도시 이곳저곳에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설 붐은 건축용 자
            재나 부품의 수요를 불러왔고, 건축용 익스팬션 조인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익스팬션 조인트는 벨로우

            즈형 신축관 이음으로, 당시 아파트 배관용 핵심 부품이었다.
            그 당시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중앙공급식 난방 방식을 적용했다. 한 곳에서 각 가구에 난방이 원활
            하게 공급되기 위해선 익스팬션 조인트가 반드시 필요했다. 성진기공은 아파트 난방 방식에 정확히 맞는
            새로운 개념의 익스팬션 조인트 완제품을 개발했다. 당시 경쟁 상대는 일본에서 벨로우즈를 들여다 반제
            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성진기공의 익스팬션 조인트는 경쟁회사의 제품과 비교해 기술력이나 제품력 측면에서 격을 달리했다. 정
            밀도나 제작에 따른 기술력에서 활용도가 훨씬 높고 편리하며, 제품 가격도 고가였다. 이러한 제품을 제일
            먼저 국산화해 납품한 곳이 잠실 고층아파트 단지였다. 당시 시장점유율이 70%를 훌쩍 넘어선 이 제품은
            기업 브랜드 가치를 단번에 끌어올리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사세 확장의 절호의 기회 반월공단 시대 개막
            경기도에 조성된 반월공단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한 중소기업 전문공업단지이자 임해
            공업단지다. 서울과 경기도에 산재한 중소기업을 섬유, 화학, 기계 등 업종별로 모아 단지

            를 조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다른 공단과는 달리 생산과 문화, 소비 등이 한데 어우
            러진 국내 최초의 신도시이자 자급자족 도시로 육성할 계획이었다. 정부는 1976년 10월

            2일 반월공단 조성 계획을 발표한 다음 이듬해 곧바로 착공에 들어가 2년여 만에 1차 준
            공했다. 공단의 전체 규모 약 1,550만㎡ 가운데에서 공장 부지는 약 785만㎡에 이르렀다.
            성진기공은 건설경기 호황에 힘입어 성수공장 내에 있던 영업 및 관리 사무실을 공장

            맞은편 3층 건물로 이전했다.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성수공장은 포화상태가 됐
            고, 임시방편으로 일부 부서를 옮긴 것이다. 김 사장은 1978년 중반부터 공장 이전을

            신중히 검토했다. 성수공장이 비좁은 데다 행정 당국의 규제가 심했던 것이 주요 이유                           1977.03.30. 반월 신공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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