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SJM 50년사
P. 66
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Ⅱ. 탄탄한 성장의 가속 엔진을 달다
사세 확장과 맞물려 외형적인 규모 확대
성진기공은 1978년 5월 16일 처음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사원을 모집했다. 이후 사세
확장으로 직원들의 업무량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신입 및 경력 직원을 충원할 필요성이
커졌다. 우선 각 부서별로 충원이 필요한 인원을 파악해 1988년 12월 14일자 <한국일
보>에 제1기 공개 채용 광고를 실었다. 모집부문은 생산관리, 품질관리, 영업, 총무, 기
획 등이었다. 이 중 기획부문은 해외 관련 업무의 수행을 위해 영어·일어 능통자로 제한
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공채 1기 입사자들은 총 6명이었다.
매출액 증가와 비례해 직원 수도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창업 이후 1978년까지 연평 1991.05. 반월 제2공장 준공
균 400% 이상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7명으로 출발한 직원은
1978년 5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직원 채용을 늘린 것은 주택경기 활성화에 힘입
어 건축용 익스팬션 조인트의 판매 호조에 기인했다.
반월공단으로 이전한 이후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임직원
들의 한마음 한뜻으로 불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1983년 산업용 익스팬션 조인트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직원 수도 100명에 육박했다. 1985년 플렉시블 튜브와 건축외압
형 익스팬션 조인트를 국산화하면서 외형적인 규모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시기 성진
기공은 산업용과 건축용 제품시장에서 단연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1984년 100명을
돌파한 직원 수는 이듬해 148명으로 늘어났다.
1988년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다시 한번 도약을 위한 호기가 찾아왔다.
건축용 익스팬션 조인트의 주문이 밀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고, 대규모 플랜트 제품시장
의 점유율도 한껏 끌어올렸다. 국내 시장에서의 가파른 성장세를 발판으로 세계화 전략
1993.10.14. 제3공장 증축 준공식 1993.09.11. 제3공장 준공 기념식
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