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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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1 통사 PART Ⅰ. 부품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다
Inside Story
평생의 교훈이 된 한겨울 밤의 출동
어느 겨울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부대장으로부터 긴급 출동 명령을 받았다. 중대장이었던 정암은 부랴부
랴 50여 명의 사병과 50대가 넘는 수송 트럭을 동원해 도열을 마쳤다. 정암은 부대장과 함께 1호차에 탑승해
5km에 이르는 차량 행군을 시작했다. 동절기 대비가 미비했던 수송 트럭은 도중에 멈추고 미끄러져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이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는 중대장의 마음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부대로 돌아온 정암에게 부대장은 차량 행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암은 사전에 철저히 대
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부대장은 길게 말하지 않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교훈을 전해주었다.
“위기는 예고 없이 닥치는 법이야. 군인은 항상 위기에 대처하는 완벽한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네. 명심하도록.”
정암은 한밤의 사건을 통해 리더는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수송부대에서의 경험은 기
업을 경영하면서 리더가 갖춰야 할 품격을 수없이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공군에서 겪은 모든 일들은 사회
생활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평소 공군 수송부대를 ‘공군주식회사’라고 여겼다.
회석 분말비료를 생산하던 경기화학공업도 그중 하나였다. 경기화학공업은 정부의 허가
를 받아 서울 오류동에 인산비료 공장을 세울 계획이었다. 마침 오류동에서 전역을 준비
하던 정암은 비료공장 건립 소식을 듣고 밤잠을 잊어가며 입사시험을 준비했다.
정암은 공군 장교 복무를 인정받아 1966년 군 제대와 거의 동시에 경기화학공업에 입사
했다. 처음 공무과장이란 직책을 받은 정암은 모든 설비를 100% 국산화하는 대규모 플
랜트 공사현장에 투입됐다. 공무과장의 주요 업무는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의 기계시설
을 모두 관리하는 일이었다. 특히 공장 건설에 따른 시설과 기계장치의 설치, 제작 등 가
장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다.
공군에서 기술 장교로 복무했기 때문에 이론은 밝았지만, 현장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다.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면서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국내에는
아직 이렇다 할 기술력이 없어 일본의 기술 표준을 참고했다. 부족했던 실무경험을 극복
하고 이론과 기술 자료로부터 얻은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사를 진행했
다. 이 과정에서 공사 자문 역할을 맡은 일본 기술자들과 숱한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일
본 기술자들은 핵심 기술을 이전하지 않거나 철 지난 기술 자료와 도면을 내놓으며 딴지
를 걸었다. 공무과 직원들과 일본 기술자 사이에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정암은 공사 책임자로서 작업이 지연되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결단을 내렸다. 일
본 기술자들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지시를 무시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설비를 뜯어고
쳤다. 공무과 직원들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해결책을 내놓았다.
김용호 회장의 직장 생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공학적인 이론을 접목해 간편하면서 효율적인 공정을 이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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