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수산가족 2025 AUTUMN

67
글. 문종필 만화평론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짧고 얇은 옷은 이제 옷장에 넣어 두고 조금은 두툼한 옷을 하나둘 꺼내 놓
을 시기다. 이럴 때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계획하기보다는 잠시 쉬면서 여유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혹은 출퇴근 시
간에 만화책 한두 권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해 보는 것도 좋다. 더위가 지나간 자리, 늘 무거운 마음이었던
가을 대신 조금은 쉴 수 있는 가을을 맞이해 보자.

마음처방 둘

SHUT UP! AND DANCE?
이은재

만화가 이은재의 《SHUT UP! AND DANCE?》는 어느 한 고등학교 에어로빅 동아
리에서 벌어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에어로빅 동아리는 체계가 있는 동
아리라기 보다는 이름만 걸려 있는 동아리다. 그래서 이 학교의 선생님은 물론, 학
생들에게도 아무런 인기를 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동아리에, 사연 있는 학생들이
하나둘 찾아와 에어로빅을 연습하고 그 과정에서 꿈과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
정은 흥미롭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성장 만화라고 부를 수 있다. 청소년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은 힘겹게 통과해온 자신의 이야기이자, 자신이 과거에 어떤 선택을
하며 지금 여기까지 걸어오게 되었는지 반성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작
품으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응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최근 바둑왕 이세돌이 어느 한 방송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의 편견으
로 인해 생각하지 못했던, 빈틈을 새롭게 찾아준다는 것이다. 즉, 바둑을 둘 때 인간들은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을 바탕
으로 두지 말아야 할 특정한 ‘수’를 피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오히
려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둑의 길 앞에 새로운 길을 만든다. 편견이 있지 않아서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소년 만화 역시
그렇다. 좋은 작품은 오히려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선사해 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과 놓쳤던 감성
을 다시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으로 떠올렸던 과거 역시 사실은 수많은 고민을 거쳐 힘들게 걸어온 과정
이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 만화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남몰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교생 선생님, 오랜 시간 외국인이라는 편견에 시달
려야 했던 현철,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막기 위해 주짓수를 배우는 재형, 자신의 꿈과는 다른 엄마의 바람으로 힘든 재형,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탈락한 원준 등. 이들은 각자 사는 방식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인기 없는 에어로빅 동
아리에 들어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들의 여정을 보며 당신이 꿈꾸었던 지난날과 현재의 고민을 떠올
리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의외의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