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수산가족 2025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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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산아이앤티
Letter2 글로벌신사업팀
엄마, 아빠께 이진우 사원
인데 책은 거들떠도 안 보고 놀이터에서 나뭇가지로 칼
싸움을 하며 한 살 두 살 먹어가던 나를 아파트에서 내
려다보며 엄마는 “어떻게 내 뱃속에서 저런 게 나왔지?”
했더랬지.
잔머리 굴리다 혼나고, 거짓말했다고 혼나고, 수학 60
점 맞고 혼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놀고만 싶었던 아들
을 유학 보내고, 군대를 보내고, 사회에 내보냈어. 삶의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내 앞길 하나 찾아내기 벅찼던 나
는 이제야 뒤를 돌아보고 더이상 삼사십대가 아닌 엄마
아빠를 발견해. 엄마가 눈이 시리다고 불평했던 바로 그
날처럼.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며 빨래를 갰던 엄마, 그러다 갑
엄마. 난 엄마가 눈이 시리다고 할 때면 겁이 났어. 내가 자기 “아으, 눈 시려. 눈이 왜 이렇게 시리지” 불평하며
겪어 본 적조차 없는 느낌이라, 엄마의 아픔에 공감해 손바닥으로 두 눈을 문지르던 모습. 소파에 앉아 그런
줄 수 없다는 게 무서웠어. 후에 그 통증이 특별히 나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이 선명
병이 아니라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하게 와닿았어. 내가 아직 미국에 있을 때, 태평양 건너
됐지만 그저 작은 안도에 그칠 뿐이었어. 나 홀로 앉은 기숙사 방에서 아빠의 수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공포였고 깨달음이었어. 수
나는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어른의 스타트 라인을 떠났 퍼 히어로의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깨달음. 사람들은 나
어. 엄마, 아빠가 나와 누나를 낳았을 때는 지금 내 나이 이가 든다는 게 슬픈 거라고들 하는데, 엄마는 슬프지는
보다도 어렸지. 그 때의 두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어땠을 않고 불편할 뿐이라고 했지. 나도 내 나이가 드는 건 슬
까. 갓 입사한 아빠, 갓 태어난 아이들, 새로운 보금자리. 프지 않아, 엄마. 그렇지만 두 사람이 나이 드는 건, 이미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었어. 사람들은 지금 세대의 키 들었다는 건, 조금 슬프네.
워드를 미래의 불확실성이라고 하지만, 시야를 사회에
서 개개인으로 좁히면 시대를 막론하고 미래를 보장받 삶의 수많은 순간을 하고 싶은 일보다 두 아이를 위한
아 만드는 선택은 없어. 생판 남이었던 스물 여섯, 스물 선택을 하셨을 엄마, 아빠. 이제는 책도 잘 읽고 부족함
일곱의 두 사람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 도, 부끄러움도 알게 된 아들이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일
에 기꺼이 뛰어들었어. 을 위한 선택을 할게. 되도록 자주, 오래. 항상 우리말로
하기 부끄러운 말은 편지에서도 영어로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태어난 꼬마 이진우는 몇 살 먹지도 않아 자기가 지금은 용기내서 말할게. 고마워. 사랑해.
엄마 아빠보다 똑똑한 줄 착각하는 고약한 어린애였어.
속고 넘어가 주는 줄도 모르고. 네 가족 중 셋이 독서광 이제 갓 어른이 되기 시작한 아들, 진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