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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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회장에게 듣는 SJM 50년의 여정 사람과 기술, 부품과 산업을 연결하다
반월공단에서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품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품질경영, 품질운동이 시작되면서 제조업 분야를
대상으로 전국 품질 분임조 활동을 정부에서 권장했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했습니다. 반월공장 이전 후
직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상당히 강하던 때였습니다. 오래 회사에 다닌
직원들이 지금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얘기를 합니다.
저 역시 권위 대신 ‘이런 것을 같이 해야 먹고산다, 물건을 함께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현장에 나가서 일하고, 어려운 게 생기면
봐주고 어울리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뎠던 것이 원동력이었습니다.
제조업에서 품질은 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평소 회장님께서 ‘기술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기술기업의 숙명입니다. 내가 현업에 있을 때는 대학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책도 보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앞서갈 수 있는 기술을
기반산업이 척박한 시대에 기술기업을 지향하는 신념에는 난관이 습득했는데, 현재의 기술 속도는 훨씬 빠르고 복잡해 과거와는
따랐을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벨로우즈만큼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자부하지만,
1975년 성수동에 성진기공을 창업하고 얼마 뒤 반월공단이 기술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몰라요. 산업의 패러다임은 계속
조성되면서 정부가 수도권 중소 제조업체들의 이전을 권했어요. 바뀝니다.
성수동에도 중소기업이 많았는데 주요 설득대상이었고, 우리에게도 30주년만 해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마침 그때 비전 선포식이 있던
이전을 권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이 소규모였고 제품도 인지도가 낮아 해라 제법 규모 있게 행사를 했어요. 50년을 맞이한 지금은 걱정이 더
공단에 입주해서 일정 규모의 공장을 짓기에는 시기상조였지만 정부 많아서 행사를 최대한 작게 하자고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정책에 부응해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지난 50년은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 기술로 열심히 해왔는데,
결국 초창기에는 제품을 팔아서 빌린 정부지원금 이자 갚기도 제조업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분야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벅차 고생 많이 했지요. 이때 우리 회사 최초이자 마지막 적자를 있지요. 거기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이런 고민으로 마음이 편치
기록했습니다. 그 추운 겨울 난방도 하지 않고 1~2년을 버티면서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들 힘들다는
IMF 외환위기 때는 수출기업으로 변모하면서 환율 때문에 오히려
덕을 봤습니다.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공급망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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