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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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PECIAL INTERVIEW
SJM의
존재 이유,
벨로우즈
SJM의 50년은 파고듦의 시간이었다. SJM의 50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그 여정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물을 파듯 연결의 기술 개발에 쏟아부은 사사 편찬의 의미를 말씀해주세요.
몰두의 결과 우물은 깊이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난 창업할 때 뭔가 이정표 같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넓은 호수로 변해갔다. 건축용 배관에서
의지가 더욱 컸습니다. 성진기공을 창업하던 1970년대는 우리나라 기반산업이 너무 취약했고,
자동차 배기계용 벨로우즈로, 다시 첨단과
중요한 부품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사다가 쓰는 게 당연한 시기였습니다. 그 당연한 상황이
차세대 부품으로 국산화의 폭을 넓혔다. 그
기계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인 저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웠어요. ‘왜 사다 써? 국산화하면 되지!’
과정에서 사람들의 희망을 기술로 실현하고,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최고의 품질력을 갖춘 부품을 세계 산업계의
지난 50년은 처음, 그 초심을 지켜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사 편찬은 그 과거를 돌아보고, 어떻게
발전으로 연결했다. 벨로우즈 전문기업이란
성장을 했는지를 우리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직원들이 회사의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글로벌 강소기업이란
일원으로서 회사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명칭도 얻었다. 자연스레 대한민국을 넘어
유럽, 미주,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무엇보다 우리 회사가 성장하기까지 신세를 진 이해관계자들도 많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인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이것이 SJM 50년의 고객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분들에 대한 인사, 그리고 감사의 의미도 담고 싶었습니다.
묵직한 여정이다.
창업 당시 첫 국산화 부품으로 벨로우즈를 선택했고, 이후 벨로우즈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의미이고 어떤 존재인가요?
성진기공을 창업하기 전 설비회사를 몇 년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우리 기술로 우리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 찾은 것이 벨로우즈였습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꼭 필요한 부품인데, 제조 기술만 있으면 소자본으로도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기술 개발이 순탄치는 않았어요. 당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유명한 공과대
교수가 참여하는 벨로우즈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진행했는데도 결과물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걸
우리가 진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수입해서 쓰던 것을 국산화해야겠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벨로우즈와 함께 50년을 보냈고, 자동차를 넘어 건축, 항공,
군용까지 다양한 플랜트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앞으로도 벨로우즈라는 초심은 변함없이
SJM의 존재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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