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수산가족 2025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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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OOSAN [ ] 마음처방전 68
당장 떠날 여유가 없는 당신에게!
바닷속 대신 유영하기 좋은 만화
마음처방 하나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 머리를 다리에 눕혀 귀를 파주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는
마냥 그 순간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황홀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눈이 부셔 어릿
어릿할 정도로 찬란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말이 진실이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가 정성껏 나의 귀를 파주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잠시 자신의 몸을 부담 없
이 맡긴 채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야무진 상상을 아베 야로는 자신의 만화
에 담았다. 평범한 소시민이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에 들
러 마음을 치유하는,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담아냈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 중 2편인 ‘긴 머리 남자’를 소개하고 싶다. 2편에서
는 나카마치 3대 기인 중 하나인 ‘카네마츠 세이지’가 등장한다. 그는 48세 도예가
이자 신장 198cm에 머리카락 길이는 186cm인 인물이다. 그가 귀 파주는 가게에
방문한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사랑했던 인물 ‘히로미’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직접 만난다기 보다는 꿈속에서나마 아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귀 파주는 가게에 방문한다. 귀를 파는 황홀한
경험 속에서 다시 ‘히로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황홀한 경험이
란 귀를 파는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꿈’꾸는 행위를 말한다. 꿈속에서 그녀를 다
시 만나는 것이다. 엉뚱하지만 이 행위가 그를 살게 한다. 그렇다면 카네마츠 세이
지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결말에서는 그가 히로미를 만났
는지 만나지 못했는지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상상의 즐거움이야말로 여행을 떠나
지 못하는 회사원들에게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상상하지 않으면 그곳에 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멀리 떠나지 못하더라도 상상을 힘으로 현실의 빈
곤을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