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3 - SJM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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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50년사 Section.2 기술혁신사 THEME Ⅰ. 국내외에서 호평받는 스테디셀러 벨로우즈
접한 적이 있어 낯익은 부품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와 닮은 벨로우즈 원천기술
벨로우즈를 개발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 벨로우즈 응용 제품인 신축관 이음은 시장에 출시하자마자 단연
는 것이 당시 국내에는 벨로우즈를 개발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 인기 부품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아파트
다. 일단 센서를 얇게 늘리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두께가 건설 붐에 따라 중앙공급식 난방 방식에 꼭 필요한 배관용 신축관
0.08~0.1mm를 오가는 센서를 개발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이음의 수요가 급증했다. SJM의 신제품인 배관용 신축관 이음은
아니었다. 용접 기술이 발달한 지금이야 쉬운 작업이지만, 그때는 건설회사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정밀도나 생산에
용접 없이 최대한 얇은 센서를 만들어야 했다. 단 0.01mm의 오차 따른 기술 측면에서 용이하고 KS 규격에도 맞아 고객이 요구하는
도 생겨서는 안 되는 특수한 공법으로 정밀하게 만들어야 했다. 꾸 품질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쟁업체들이 일본에서 벨로우즈
준히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관을 어떻게 늘리고 주름을 잡을지 터 를 들여와 반제품을 공급한 반면, SJM은 국산화에 성공해 완제품
득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을 납품했다. 고층 아파트 붐이 조성되면서 배관용 신축관 이음은
그렇게 벨로우즈를 만들어 생산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영세함을 날개 돋친 듯 팔려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
면치 못했다. 더욱이 정밀한 부품을 필요로 하는 시장조차 형성되 히 했다.
지 않았다. 비록 완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데까지 성공하지 못했으 사실 회사 초창기 영세한 규모여서 다른 기업들처럼 외국에서 기술
나, 이후 회사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아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 이나 설비를 들여올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할 수밖에
다. 처음 센서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 없는 상황이었다. 어려운 사업 환경 속에서도 자체 기술을 계속 발
실을 알고 벨로우즈를 응용한 제품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시킨 결과 고유한 생산 기술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이것이
THEME STORY
숙명과 같았던 벨로우즈와의 인연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엔지니어로서 설비나 부품 관련 업무를 맡았다. 설비업체 창업 전부터 벨로우즈란 존재를 알고 있었고, 실
제 개발을 추진하던 곳에 가보기도 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부품에 대한 매력과 함께 도전의식도 싹텄다. 이처럼 김용호 회장과 벨로우즈와
의 인연은 아주 각별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쓰는 벨로우즈는 전부 일본에서 수입했다. 볼트나 너트처럼 거의 모든 기계설비에 필요한 제품
을 국내에서는 누구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산화에 성공만 한다면 사업성이나 장래성만큼은 어느 부품에 뒤지지 않았
다. 당시 시쳇말로 개발만 하면 대박을 터트릴 제품으로 손꼽혔다. 문제는 벨로우즈를 만들기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나 부품업체에서 연구개발에 나섰지만, 결국 완성된 제품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김 회장은 누구도 쉽게
만들지 못할 부품이니 자신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김 회장은 이후에도 벨로우즈와
숙명과 같은 인연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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